좋은차보다 좋아하는 차를 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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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Chevrolet-Sonic-RS-Back-Side-View

“황기자는 무슨차가 제일 좋아?” 참으로 난감한 질문 중 하나다. 지금도 누가 이런 질문을 하면 여전히 대답하기 어렵다. 모 자동차잡지 에디터로 활동하던 2000년대 후반 무렵. 사람만나는 직업이다보니, 정말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을 만난다. 조금 친해지고 나면, 약속이나 한듯 들어오는 질문.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자동차 전문기자가 좋아하는 차가 어떤 것인지 궁금할 수 있다. 특히나 해당 브랜드를 홍보하거나 담당하고 있는 자리라면, 당연 자사의 제품이 최고라고 평가해주면 더더욱 좋겠지. 그래서 나중엔, 업계 관계자가 묻는 좋은차는 그래도 그 회사의 디비전 또는 피 한방울이라도 섞인 녀석들을 거론한다. 그래야 커피 한잔이라도 기분 좋게 마시지 않겠나? 자동차 전문기자의 입에서 나올 수 좋은차란 반드시 어떤 기준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그래도 내 주머니 사정과는 관계없는 하이엔드 애들을 쭉 늘어놓는다. 당시의 나의 기준은 애스톤마틴 DB9이었다. 그 차는 내 여러 기준을 따져봐도 정말 좋은차였다. 물론 더 뛰어난 애들도 있긴 했지만, 영국쪽 잡지사에서 일하다보니 매일 접하는 게 재규어와 애스톤마틴이었는데. 나름 기사 속에서 역사라던가, 얽힌 이야기 등을 접하고나니 애스톤마틴은 나에겐 정말 좋은차였다.

하지만 그차를 왜 좋아하냐고 이유를 물으면, 글쎄…점점 이야기가 꼬여간다. 겨우겨우 끼워 맞출 수 있는 이야기는 역사나, 스타일이나, 제임스 본드에서 우러나온 아우라 같은 거? 하지만 이유에 대해선 솔직히 말할 수 있는게 없다. 이유는 나는 그 차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스톤마틴은 나에게 좋은차이나, 좋아하지는 않는 차다. 이 무슨 말장난이냐고도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차였다면, 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흥쾌히 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에 대해서 좋은차인 이유는 충분히 늘어 놓을 수 있겠으나, 내가 좋아하는 이유를 대라면 역시나 혀가 얼어붙는다. 나는 그 좋은차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를 좋아하는 우리들은 남모르게 숨기는 무엇인가가 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은 작고 강한 자동차를 좋아한다. 간단하게 핫해치는 나에게 정말 좋아하는 차다. 또 한번 파고들어가자면 에코텍 계열 해치백이 맘에 든다. 옛 대우나,쉐보레, 오펠 쪽 구동계통이나 스타일, 느낌이 좋다. 사회에 입문하면서 아벨라로 운전을 배웠고, 라노스 로미오 3도어 해치백으로 튜닝을 시작했다. 그 다음 모델은 국내 초레어였던 칼로스 3도어 수동이었다. 지금도 칼로스 3도어는 많은 애착이 간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요즘은 쉐보레 소닉(한국명 아베오) RS 수동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미국에는 정말 엄청난 종류의 해치백들이 많다. 골프 GTI나 R 역시 이 곳에서는 가격도 만만해서 구하기가 쉽다. 하지만 에코텍 엔진 계열의 GM스러운 해치백을 좋아하는 나에겐 골프 R보다 소닉 RS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뷰익이 아스트라 OPC를 가져올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요즘. 만약 아스트라가 온다면 난 정말 지갑을 열 것이다. 그 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치백의 절정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차들은 대체로 그렇게 좋은차는 아니다. 소닉과 골프를 비교하기엔 엄청난 억지를 부려야 할테고, 순발력과 연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에코텍 계열을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꼰데로 보일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사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차들은 왜 그런지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한번은 차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각자 좋아하는 차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포르쉐 918, 아벤타로드, 베를리네타, 후이에라…” 모인 사람들 입에선 한바탕 럭셔리카 모터쇼가 한창이다. 내 차례가 되었다. (“소닉 RS 수동을 한번 타보고 싶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최근 모습을 드러낸 스팅레이 Z51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물론 스팅레이 역시 사모하는 차 중 하나다. 하지만 작고 강력한 자동차에 대한 향수가 말라갈때쯤 생각해볼 차다. 분위기가 쫌…소닉 이야기 했다간 알싸할 것 같았다.

나는 왜 내가 좋아하는 차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차가 좋은차가 아니었기 때문인가? 하지만 참으로 병신같은 자격지심이다. 미국 이웃들을 둘러보면 내가 목말라하는 갈증에 생수 같은 사례들이 많다. 10억짜리 집에 살면서, 아직도 80년대에 구입한 토요타 캠리를 타시는 분이 있는가하면, 차고에 레인지로버와 E클래스가 있음에도, 토요타 프리베라라는 미니벤만 줄곧 타시는 분도 있다. 입장이 꽤 까다로운 타운하우스 단지에 들어가봐도, 차고엔 80년대 어코드나 캠리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분들 참 재밌다. 도장도 다 벗겨진 캠리를 타면서도, 차 자랑이 장난이 아니다. 요즘 나오는 일본차는 저 당시 모델에 비하면 장난감이라고 떠드신다. 그분들에겐 차고에 있는 레인지로버나 E클래스가 좋은차인지는 몰라도, 결코 좋아하는 차는 아니다. 좋아하는 차에 대한 생각. 내가 어떤 한 모델에 관해 감성적, 이성적 장점을 떠들고, 그럼으로서 묘하게 느껴지는 쾌감이 생긴다면 그 차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다.

나 역시 주말용으로 쓰는 비싸지는 않지만 적당히 재밌는 로드스터를 한대 가지고있고, 주중에 타는 전기차도 있다. 로드스터는 한국GM이 G2X라는 이름으로 잠깐 팔았던 모델의 미국 버전인 새턴 스카이라는 차다.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 한국에 갓 출시한 G2X를 잠깐 시승하면서 그 매력에 도취됐고, 미국에 와보니 수동까지 있기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해치백이 아닌 모델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차다. 그렇다고 내가 지조가 없는 건 아니다. 엔진이 에코텍 2.0리터 직분사 터보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리프는 좋아하지 않는 차다. 전기차로서 정말 잘 만든 좋은차이긴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탓에 관리가 영 아니다. 오늘도 나는 쉐보레 홈페이지에서 소닉 RS의 견적을 냈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요즘 주변 친구들이 BMW를 참 많이 산다. 크레딧이 어느 정도만 되면, 한달에 500달러 정도면 5시리즈를 탈 수는 있다. 그래서 나더러 BMW를 사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4만달러의 여유 자금이 생긴다면, 소닉을 사서 꾸밀 것 같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만족도는 최고일 듯 하다.

체면. 시선. 환경. 사정. 이런 것들이 좋아하는 차보다 좋은차를 사야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역시 그런 것들이 남들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차를 쉽게 내뱉지 못하게 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진짜 부질없는 것 아닌가? 좋은차보다 내가 좋아하는 차를 당당하게 말하고, 고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소닉RS를 살 돈이면 아반떼를 산다는 참 재미없는 생각들이 대한민국의 도로를 무색무취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반떼를 정말 좋아하는 이들에겐 미안하다. 미국에 살면서, 좋은차와 좋아하는 차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먹고살기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 80년대 어코드를 타면서, 2015년형을 비웃는다. 80년대에 나온 자기 차가 최고라는 거다.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좋아하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힘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좋아하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 그만한 꿀잼이 없다. 우리는 ‘좋아한다는’ 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내가 좋아하는 차를 고르는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차가 곧 좋은차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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