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i3 with Range Extender
로스앤젤레스는 변화의 도시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여기엔 약간의 도적적 의무감도 포함된다. 3년전 치솟은 개스값과 더불어 지구 온난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짙을 때에. 패션은 종이를 택했고, 자동차는 하이브리드를 입었다. 헐리우드와 베벌리힐스에 사는 이들에게 토요타 프리우스는 단지 연료비를 조금 더 아껴보려는 이유의 결과가 아니다. 당시 트렌드는 뭔가 지구를 지켜내야 했고. 자신이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을 과시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프리우스에게서 그런 도덕적 우월감을 느낄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이들이 타고 다니기에 희소성에 떨어진 것이다.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이제는 가정용 220볼트로도 충전되는 배터리를 지닌 네바퀴 탈 것이 관심사가 됐다. 전기차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쉐보레가 전기차 볼트를 내놓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볼트는 GM이 위기의 순간을 겪는 과정에서 상당한 얼굴마담 노릇을 했고, 시장에 나왔을 때는 너무나 식상해져 있었다. 지금 타는 프리우스보다 딱히 지구를 더 아낄 수 있을 만큼의 효율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닛산 리프가 나왔다. 오직 전기로만 약 100마을을 주행할 수 있는 거리와 품질.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이 될까? 문제는 리프가 달고 있는 배지였다. 이때 테슬라 모델S가 헐리우드에 등장했다. 단일 충전으로 약 200마일 이상을 달릴 수 있었다. 효율은 최고였지만 ‘테슬라’라는 배지는 사람들에게 너무 신선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선함을 가격이라는 깊이로 채웠다. 거기엔 10만 달러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다.
남들과 다른 구동으로 달리는 차.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차. 이런 약간은 특수한 조합을 선택하려면 브랜드의 가치가 중요하다. 아니면 테슬라처럼 10만달러라는 가격으로 우월성을 탄생시켜도 된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를 중요시 여기는 소비자들은 보다 신뢰 깊고 고급스러운 브랜드에서 전기차를 만들기를 원한다. 이런 가운데 BMW가 i3라는 아주 당돌한 녀석을 내놓았다.
i3는 지난 2013년 LA오토쇼를 통해 미서부에 처음 공개행사를 가졌다. 트렌드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는 이 차를 매우 주의 깊게 살펴봤다. 좁고 높은 보디 스타일. 이로 인해 BMW라는 값어치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외관. 전기차라는 장점 외에는 도무지 장점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자동차. 지역 언론들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반응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차를 타는 것은 지적과 미적인 감각을 중시하고 나아가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착한 소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BMW가 ‘미래’를 만들었다고 말도 빼놓지 않는다.
다른 것은 동의할 수 없다 해도, i3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래를 보는 것은 맞다. 마치 한지를 가볍게 발라 만든 듯한 인테리어 배경 컬러가 초침을 빠르게 돌린다. 결벽증 환자가 디자인한 듯한 매우 깔끔하게 정돈된 센터콘솔과 더불어 일체의 기능들을 디스플레이 모니터 안으로 몰아 넣었다. 좌우로 활짝 펼쳐진 도어 뒤로 뒷좌석에도 눈을 옮겨본다. 빠르게 깎아 내린 뒷도어가 무색하리만큼 어깨와 허리 공간이 비교적 넉넉하다. 나름 중앙에 컵홀더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라이프모듈’이라고 불리는 승객을 위한 공간의 틀이 알루미늄-카본파이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의 주적은 바로 무게. 무거운 무게는 모터가 조금 더 전기를 빨아들여야만 차를 움직일 수 있도록 채찍을 가한다. 이런 부담을 덜고자 BMW는 전기차의 승객공간을 가볍고 단단한 신소재로 만들어냈고 섀시와 분리시키는 프레임 구조로 설계를 했다. 마치 레고 자동차처럼 배터리가 바닥에 깔려있는 구조 위에 승객 공간을 놓으면 된다. 이 같은 분리형 설계는 배터리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렇게 BMW는 3135 파운드(2행정 주행연장용 엔진 포함)라는 무게를 만들어냈다. BMW는 이와 더불어 전기차의 주행 가능 영역을 넓히는 것에도 크게 주목을 했다. i3는 순수전기동력 모델과 함께 주행연장장치가 붙은 두 가지 모델이 나온다. 순수 전기동력 모델은 주행연장동력 장치가 포함된 것보다 약 300파운드가 가볍다. 하지만 엔진이 달린 모델이라고 할지라도 닛산 리프보다 약 200파운드 정도 가볍다. 이 모든 결과물은 알루미늄-카본파이어로 구성된 보디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스티어링 휠 오른쪽으로 솟아나온 두툼한 다이얼을 돌려 모터를 가동시킨다. 다양한 정보창들이 일제히 깨어나며 달리기 준비를 마친다. BMW라는 배지 덕분에 i3 역시 궁극의 드라이브 전기 머신으로 봐야 한다. 시속 60마일까지 가속은 약 7초 내외. 하지만 토크가 시작부터 밀려오는 전기차의 특성상 체감 속도 도달은 상당히 빠르다. 주행 모드는 콤포트, 스포츠 플러스, 에코 플러스를 고를 수 있다. 에코의 경우 시속 56마일로 속도가 제한되기도 한다.
첫 느낌은 조용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이 차를 처음 타고 있다면 몇가지 적응할만한 요소들이 있다. 시내 주행같이 낮은 속도에서는 액셀을 떼면 뒤에서 당기는 듯 울컥거리면서 오너의 신경을 거스른다. i3의 자랑 중 하나인 원페달 드라이빙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제동이 되고, 이는 충전으로도 이어진다. 제동력은 매우 민감하고 강력하다. 시속 70마일에서 급제동을 하면 약 160피트 내로 차를 세울 수 있다.
전기차의 특징 중 하나인 무음 역시, BMW는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소리를 살려냈다. 이유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한다. 좁고 높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핸들링은 상당히 쫀쫀하다. 3시리즈를 타고 있다면 이차로 옮겨와도 핸들링에서는 크게 위화감이 없다. 하지만 고속으로 달리는 프리웨이에 올라타면 큰 트럭이나 가파른 코너에서 약간의 언더스티어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i3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얼마나 오래 갈수 있냐는 것이다. 순수 전기 주행으로만 따지면 이 차는 약 72마일을 달릴 수 있다. 하지만 647씨씨 2행정 엔진을 통해 약 75마일 정도를 추가로 달릴 수 있다. 물론 이 엔진은 발전기와 연결되어 배터리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으로 동력계통을 직접 움직이지는 않는다. 물론 거리연장장치가 있다고 한들, 300마일 정도의 장거리 여행을 이 차로 가는 것은 그렇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EPA기준, 전기로 달릴 때 i3의 복합 연비(시내+하이웨이)는 117MPGe를 기록한다. 하지만 신나게 달리면서 연료를 통한 주행거리연장장치까지 소비한 결과는 공인연비에 약 절반 가량에 미치는 것 같다.
요즘 로스앤젤레스에서 인기를 끄는 전기차는 단연 테슬라다. 하지만 i3 역시 심심치 않게 모습을 보인다. 테슬라는 가격으로 희소성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BMW라는 이름을 유지하면서도 테슬라의 반값으로 i3를 살 수 있다.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i3쪽이 똑똑함에 합리성을 더한 소비자로 비춰진다. 전기차가 점점 많아지는 요즘. 마치 지구를 생각하던 이들이 프리우스를 버릴 때와 같이 희소성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BMW로 돌리는 시선이 점점 많아진다. 현실을 사는 전기차를 탈 것이냐? 아니면 미래를 경험하는 전기차를 탈 것이냐? 작은 차이 같지만 충전소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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